(반도체 1부) 반도체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1-1부: 진공관의 한계와 기적의 스위치, 트랜지스터의 탄생
1946년 공개된 세계 최초의 범용 전자 컴퓨터 에니악(ENIAC)은 방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는 30톤짜리 거인이었습니다. 이 거대한 기계를 움직인 핵심 부품은 전기의 흐름을 켜고 끄는 1만 8,000여 개의 진공관이었습니다.

진공관은 유리관 내부를 진공 상태로 만들고 필라멘트를 가열해 전자를 방출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했습니다. 문제는 백열전구처럼 항상 뜨겁게 달아올라 전력을 엄청나게 소모했고, 수명이 극히 짧아 며칠이 멀다 하고 타버렸다는 점입니다.
엔지니어들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끊임없이 고장 난 진공관을 찾아 갈아 끼워야 했습니다. 불빛을 보고 날아든 나방이 타죽어 합선을 일으키는 바람에 시스템이 멈추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컴퓨터가 실생활에 쓰이려면 열도 나지 않고 고장도 잘 나지 않는 고체 형태의 물리적 스위치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이 난제를 해결한 곳은 미국 통신사 AT&T 산하의 벨 연구소(Bell Labs)였습니다. 물리학자 존 바딘(John Bardeen),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 그리고 그룹 리더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 세 사람은 유리관 속 진공 대신 고체 물질 내부에서 전자의 흐름을 통제하는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1947년 12월,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브래튼과 바딘은 게르마늄(저마늄) 결정 표면에 머리카락보다 가는 금박 전극 두 개를 1인치의 수백 분의 1 간격으로 밀착시키는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미세한 전압을 가하자 전류가 수십 배로 증폭되어 흘렀습니다. 깨질 유리도, 불타는 필라멘트도 없는 고체 스위치, 바로 점접촉 트랜지스터(Point-contact Transistor)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작은 부품은 진공관보다 크기는 100분의 1 이하로 작았고 전력 소모와 발열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었습니다. 세 사람은 이 공로로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하며 반도체 역사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1-2부: 천재의 오만과 '8인의 배신자', 실리콘 밸리의 씨앗
노벨상을 받은 윌리엄 쇼클리는 학계에 안주하지 않고 직접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1956년, 그는 어머니가 살던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마운틴뷰에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차렸습니다. 당시 이곳은 테크 단지가 아니라 살구와 자두를 재배하던 한적한 과수원 지대였습니다.
쇼클리의 명성을 듣고 전 미국에서 가장 유능한 20~30대 젊은 과학자와 공학도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이론 물리학자였을지는 몰라도 최악의 경영자였습니다. 성격은 극도로 독선적이었고 직원들을 병적으로 의심했습니다. 연구소 내부 자물쇠를 긁은 범인을 찾겠다며 팀원 전원에게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강요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유망한 실리콘 기반 트랜지스터 연구를 독단으로 중단시키는 등 경영 실책도 이어졌습니다.
결국 1957년, 8명의 핵심 엔지니어가 결단을 내렸습니다. 훗날 현대 기술사를 바꾼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와 고든 무어(Gordon Moore)를 비롯한 8명은 쇼클리에게 사직서를 던지고 연구소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배신감에 휩싸인 쇼클리는 이들을 "8인의 배신자(The Traitorous Eight)"라고 낙인찍고 업계에서 매장하겠다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이 8명은 뉴욕의 사업가 셔먼 페어차일드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를 창립했습니다. 페어차일드는 기술적으로 중대한 전환점을 만들어냈습니다. 기존에 쓰이던 게르마늄은 열에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지구 표면 어디에나 흔한 모래(규소)에서 추출할 수 있고, 고온에서도 안정적인 실리콘(Silicon)으로 소재를 전격 교체했습니다.
여기에 실리콘 표면에 얇은 산화막을 입혀 회로를 보호하고 평평한 판 위에 회로를 화학적으로 새겨 넣는 평면 공정(Planar Process)을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 덕분에 손으로 일일이 전선을 땜질할 필요 없이 균일한 품질의 반도체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페어차일드가 터를 잡은 샌프란시스코 남부의 과수원 지대는 서서히 실리콘 칩 제조사들이 모여드는 중심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습니다.
1-3부: 티끌 위에 세운 도시 - 집적회로(IC)와 무어의 질주
1950년대 후반, 전자공학계는 이른바 '숫자의 폭정(Tyranny of Numbers)'이라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컴퓨터 성능을 올리려면 수만, 수십만 개의 트랜지스터와 저항, 축전기가 필요한데, 이들을 구리 전선으로 일일이 납땜해 연결하다 보니 크기도 커지고 연결 부위에서 걸핏하면 단선과 오류가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해법은 "모든 부품을 연결선 없이 한 덩어리로 만들 수 없을까?"라는 발상의 전환에서 나왔습니다. 1958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의 엔지니어 잭 킬비(Jack Kilby)는 게르마늄 조각 하나 위에 트랜지스터, 저항, 축전기를 모조리 올려 작동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뒤이어 1959년, 페어차일드의 로버트 노이스는 평면 공정을 응용해 실리콘 기판 위에 알루미늄 배선까지 화학적으로 증착해 통째로 인쇄해 내는 훨씬 완성도 높은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배선 연결 문제를 원천 해결한 집적회로(IC, Integrated Circuit)가 공식 탄생한 순간입니다. 이 업적으로 킬비와 노이스는 반도체 집적회로의 공동 발명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깁니다.
1968년, 페어차일드를 이끌던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다시 한번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통합된 전자공학(Integrated Electronics)'의 머리글자를 따서 세운 회사가 바로 인텔(Intel)입니다. 인텔은 1971년, 컴퓨터 한 대의 연산 회로 전체를 가로 4mm, 세로 3mm 크기의 작은 실리콘 조각 하나에 압축해 넣은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텔 4004'를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방 하나만 하던 컴퓨터의 두뇌가 마침내 손톱만 한 크기로 축소된 것입니다.

인텔 창업 전인 1965년, 고든 무어는 산업의 운명을 예견하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마이크로칩에 집적되는 트랜지스터의 수는 매년(훗날 2년으로 수정) 2배씩 증가할 것이다.
이 간결한 관찰은 전 세계 반도체 엔지니어들에게 절대적인 기술 개발의 가이드라인이 되었고, 훗날 '무어의 법칙(Moore's Law)'으로 명명되었습니다.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2년마다 회선 두께를 줄이고 트랜지스터 집적도를 2배로 끌어올리는 극한의 치킨게임을 벌여야 했습니다.

저널리스트 돈 회플러(Don Hoefler)가 1971년 기사에서 이 지역을 가리켜 쓴 이름,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는 그렇게 전 세계 테크 혁명의 심장부로 공식 자리 잡았습니다.
진공관의 발열을 잡기 위해 시작된 작은 스위치 연구는 불과 수십 년 만에 수십억 개의 스위치를 손톱 크기 판 위에 얹는 집적회로 기술로 진화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작아진 반도체는 컴퓨터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담당할까요?
이어지는 2부에서는 현대 디지털 세상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 정보를 담아두는 '메모리 반도체'와 연산을 수행하는 '시스템 반도체'의 구조와 차이점을 파헤쳐 봅니다.